조선을 지옥으로 만든 재앙
"먹을 것이 없어, 사람이 사람을 먹었다."
— 조선왕조실록
게임 트레일러에서 이 문장을 처음 마주쳤을 때, 단순한 다크 판타지 세계관 설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찾아보니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곧 출시될 한국 개발사의 신작 액션 게임 MOOSA: Dirty Fate가 모티브로 삼은 사건,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 이야기입니다.
경신대기근이란 무엇인가
경신대기근은 조선 현종 재위기인 1670년(경술년)과 1671년(신해년) 에 걸쳐 발생한 대기근입니다. 경술년과 신해년의 앞글자를 따 '경신(庚辛)'이라 부릅니다.
규모가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조선 인구 약 1,200~1,400만 명 중 최소 15만에서 최대 85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순한 흉년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팔도 전체가 동시에 흉작에 빠진 초유의 사태였으며, 행정이 마비될 정도의 국가적 재앙이었습니다.
원인: 17세기 소빙하기
이 재앙의 뿌리는 소빙하기(小氷河期) 에 있습니다. 16~17세기 지구 기온이 평균 1~1.5℃ 낮아진 이 시기, 태양 활동 감소와 화산 분출이 맞물리며 전 지구적 이상기후가 이어졌습니다.
조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670년 7월, 전국에 때아닌 우박·서리·눈이 내려 추수를 앞둔 작물이 죄다 말라 죽었습니다. 이듬해 봄에는 살인적인 가뭄이 대지를 태웠습니다. 가까스로 가뭄이 끝나는가 싶더니 곧바로 전국적인 홍수가 들이닥쳤습니다. 병충해와 소 전염병(우역) 까지 겹쳐, 소가 죽으면서 농사 복구 자체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후유증을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자연재해 하나만으로도 감당이 어려울 판에, 모든 재해가 한꺼번에 덮쳐온 것입니다.
조선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웃 청나라와 일본 에도 막부도 같은 시기에 대기근으로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17세기는 말 그대로 동아시아 전체가 기후 재앙에 신음하던 시대였습니다.
참상: 실록이 기록한 지옥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담담하지만, 그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초근목피마저 바닥이 난 백성들은 결국 인육에 손을 댔습니다. 길거리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쌓여갔고, 시체를 치울 사람조차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진휼을 담당하던 관리들도 죽어나갔습니다. 왕실 종친이 쌀을 구걸하러 다닐 지경이었고, 고관대작인 병조판서 김좌명마저 굶주리다 병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조정은 강화도와 남한산성의 비상 군사 식량까지 풀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현종은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가엾은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허물은 나에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은 백성들에게 내린단 말인가."
경신대기근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이후 조선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를 촉발했습니다. 대규모 유민이 발생하며 북방과 만주로 향했고, 이것이 훗날 청나라와의 국경 분쟁으로 이어져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지는 계기가 됩니다. 양반의 경제력이 약화되며 신분 질서가 흔들렸고, 재력으로 신분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경신대기근과 K콘텐츠
이 처참한 역사는 이미 여러 K콘텐츠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입니다. 얼음이 평년보다 일찍 얼고, 흉작이 연속되고, 극도의 굶주림 속에 괴물이 창궐하는 세계관은 경신대기근의 실록 기록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작가 김은희는 직접 "킹덤은 '배고픔'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킹덤의 좀비는 단순한 공포물의 괴물이 아닙니다. 굶주린 백성이 무언가를 먹고 또 다른 무언가가 되는 이야기, 그 밑에는 경신대기근의 기억이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게임이 그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다음 편 예고
2026년 3월, Xbox Partner Preview에서 한국 개발사 IGGYMOB의 신작 MOOSA: Dirty Fate가 공개됐습니다. 경신대기근을 배경으로, 모든 것을 잃은 무사 '건'이 인간으로 위장한 요괴들과 싸우며 전설 속 존재 이무기의 진실을 추적하는 다크 액션 게임입니다.
트레일러에는 배우 김학철이 사극 어투로 읽어 내려가는 내레이션이 흐릅니다.
"전하, 전하께 아뢰옵니다. 산천에 초목은 이미 시들어 죽어 썩어, 황성 안팎에는 이미 굶어 죽은 백성의 시신이 쌓여가고 있사옵니다…"
이 게임이 경신대기근의 역사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다음 편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